당신은 누구를 이웃이라 부르나요?
우리는 살면서 이웃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사용합니다.
옆집 사람.
같은 동네 주민.
같은 국가의 시민.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생각합니다.
"내 이웃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야. 같은 생각,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
2000년 전, 예수님께 한 율법교사가 물었습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증오의 역사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눈에 사마리아인은:
- 혼혈의 민족 - 순수한 혈통을 잃은 자들
- 배교자 - 예루살렘이 아닌 그리심 산에서 예배하는 자들
- 부정한 자들 - 함께 먹지도, 대화하지도 않을 대상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 요한복음 4:9 (개역한글)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사마리아인과의 접촉 자체가 부정을 타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계곡
예수님의 비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 에서 여리고 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 누가복음 10:30 (개역한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는 약 27킬로미터.
이 길은 **'피의 길'**이라 불렸습니다. 강도들이 숨어있기 완벽한 지형이었죠.
한 여행자가 이 위험한 길을 홀로 가다가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여행자를 폭행하고, 옷을 벗기고, 가진 것을 모두 빼앗고,
반쯤 죽은 채로 버려두고 떠났습니다.
종교인들의 외면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제사장.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재자.
그가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보았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 누가복음 10:31 (개역한글)
이어서 레위인이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레위인. 성전에서 제사장을 돕는 사람.
"또 이와 같이 한 레위 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 누가복음 10:32 (개역한글)
당시 율법에 따르면,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졌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종교적 의무를 인간적 긍휼보다 우선시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구원자
그때, 한 사마리아인이 그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는 민족. 부정한 혼혈인.
그런 사마리아인이 쓰러진 사람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마리아 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 누가복음 10:33 (개역한글)
그리스어 원문은 '스플랑크니조마이'.
창자가 뒤틀릴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는 뜻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치료했습니다.
부상자를 자기 나귀에 태우고 여관까지 데려갔습니다.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 누가복음 10:35 (개역한글)
데나리온 둘은 노동자 이틀 품삯. 약 2주간 머물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뒤집힌 질문
이야기를 마치신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 누가복음 10:36 (개역한글)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처음 질문: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질문: "누가 이웃이 되었습니까?"
이웃은 찾는 대상이 아니라 되어야 할 존재였던 것입니다.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10:37 (개역한글)
우리 시대의 사마리아인
현대의 경계선들
우리 시대에도 수많은 경계선이 있습니다.
- 정치적 성향 "저쪽 편 사람들과는 대화조차 하기 싫어"
- 경제적 격차 "저런 사람들과 우리가 무슨 상관이야"
- 문화적 차이 "그들은 우리와 너무 달라"
외면하는 이유들
우리도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외면합니다.
"바쁘니까"
현대인의 가장 흔한 변명.
"위험하니까"
낯선 사람을 돕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일이 아니니까"
누군가 다른 사람이 도울 거야.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5:7 (개역한글)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 마태복음 25:40 (개역한글)
더 깊이 알아보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단순한 도덕 교훈이 아닙니다.
이는 1세기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갈등을 정면으로 다룬 혁명적 메시지였습니다.
예루살렘-여리고 도로는 실제로 로마 시대에 '아둠밈 비탈'이라 불렸습니다. '피의 비탈'이라는 뜻이죠.
당신의 여리고 길은 어디인가요?
지금 이 순간, 당신 주변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 외로운 이웃
- 소외된 동료
- 상처받은 친구
-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누군가
그들에게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요?
지나가는 제사장?
외면하는 레위인?
아니면... 멈추어 서는 사마리아인?
📖 이 이야기를 성경에서 직접 읽어보시겠어요?
선한 사마리아인의 완전한 이야기는 누가복음 10장 25-3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과 율법교사의 대화, 영생에 대한 질문, 그리고 이 놀라운 비유까지... 이 짧은 글에 담지 못한 더 많은 감동과 교훈이 성경 본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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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당신의 삶에서 경계선은 무엇인가요? 종교? 정치? 계층? 그 경계를 넘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구해보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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